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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

가을 노래

by minhang 2020. 11. 16.

가을 노래

     /이정화

 


가을이 떠나고 있는 자리에 빛이 내린다
가을은 먼 곳에서 찾아와서
마디마다 삶의 노래를 엮어내고
이제 홀연히 떠나고 있다.

 

은행잎에 물든 가을의 소망은
한가닥 꿈이었을까.

 

잎이 지는 거리
낙엽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가을의 꿈은 다만
그것만으로 슬퍼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은 어둠 속에서 불어와서
허망의 빛을 잠재우고
무엇이 서러워서 밤새워
소리없이 흐느껴 우는 것일까.

 

빛이 내리는 벌판에 서면
손금처럼 묻어 나오는
진한 목숨의 빛깔.

 

 

여름날의 긴 그림자를 밟으며
침묵 속에서 가을은 오고
단풍잎처럼 뜨거운 소망을 남긴 채
바람 부는 겨울 속으로
가을은 이제 떠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저무는 푸른 강변에 서서
이루지 못한 꿈들을 강물에 씻고
눈물로 조그맣게 띄워 보내면
물결마다 굽이쳐 흐르는
내 삶의 노래들.

 

어둠이 스며드는 거리.
새들은 둥지를 찾아 날아가고
밤은 쉽사리
어둠만으로는 침몰하지 않는다.

 

잠시 두 손을 모아
하루 해를 고이 걸러내고
먼 하늘을 향해 묵도하면
낙엽처럼 서러울 것도 없는
내 生의 노래는 바람을 타고
가을의 향기처럼 흐르고 있다.

 

 

-이정화 시집 [당신과 함께 김치를 담글 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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