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꽃게탕을 끓이며

minhang 2024. 1. 15.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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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탕을 끓이며

/ 이정화

껍질째로 끓는 물에 집어넣으니

갑자기 열을 받았는지 온몸에 화색이 감돈다

삐죽삐죽 삐져나온 집게 발가락은

뜨거운 물에도 쉽게 풀어지지 않는

갑각류의 견고한 내력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허망의 거품들을 걷어내고 나니

바다 향기 그윽한 꽃게의 맑은 눈물이

투박한 냄비 안에 가득히 고여 나온다

이제는 그대의 단단한 껍질을 벗겨야 한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생의 굴레에서

오랫동안 은밀하게 감추어 두었던

슬픔의 하얀 속살들을

한 점도 남김없이 드러내어야 한다

-한국현대시 2023년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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