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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의 시집과 작품 세계- 투명한 언어, 회색빛 슬픔

by minhang 2020. 8. 8.

기형도 시인은 1960년에 출생하여 1985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등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1989년 3월에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그는 비록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여러 문예지에 독창적이고 개성이 강한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가 죽은 후에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으니,  그의 유고 시집이 된 셈이다. 

 


 나는 그의 시들을 1988년 '문예중앙' 봄호에서 처음으로 읽어 보았다. 

 

그때 나는 그의 시들이 일반적인 서정시와는 다른 구조와 형식을 취하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그의 시들은 나에게 상당히 개성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다음 해에 나는 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사게 되었고, 
책 말미에 실린 해설을 통해서 그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그의 죽음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유명 신문사의 정치부 기자였던 그가 

과연 죽어야할 이유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속 시원한 해답이 나오지 않은 것 같다.

다만 그의 시들을 통해서 짐작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시집을 읽고 나서 나는 문득 T.S. 엘리엇의 시들이 떠올랐다. 

 

아마 시적인 분위기가 엘리어트의 시들과 유사한 면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형도의 시들을 통해서 그의 어두운 유년시절의 일부분을 들여다본 것 같아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  

 

그가 성인이 되고 나서의 이야기들도 대개가 우울하고 슬픈 이야기들이었다. 

그의 시들의 분위기를 색깔로 나타낸다면 회색빛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확실히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강한 흡인력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그의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우울함과 함께 투명한 슬픔 같은 것이 산문적인 시어들과 함께 

적당하게 어우러져 그만의 독특한 시적 공간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시들은 대개가 호흡이 긴 산문시들이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일반적으로 산문시들이 놓치게 되기 쉬운 시적인 긴장감과 속도감들을 훌륭하게 구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인의 내면의 심리들을 보편적인 시어들을 통해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시, 곳곳에서 죽음에 관한 언어들이 불쑥불쑥 침입자처럼 한 번씩 나타나곤 하는데,

어쩌면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갔다. 그러나 그의 시들은 아직도 살아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 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기에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詩,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中에서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詩, '어느 푸른 저녁'中에서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영혼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창문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 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 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詩, '바람은 그대 쪽으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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