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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칼럼

디지털치매를 예방하는 지름길- 종이에 글을 쓰는 즐거움

by minhang 2020. 8. 20.

종이에 글을 쓰고 싶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사각거리며 하얀 종이에 글을 쓰고 싶다.

종이에 글을 써 본 지가 언제였던지 까마득하다.

 

요즘은 시 한 줄을 쓸 때에도 노트보다는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글을 쓰는 것이 나도 모르게 익숙하게 되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린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모양이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글을 쓸 때에는

주로 줄 그어진 노트와 흑색 볼펜을 사용하곤 했다.

 

 

한 편의 시를 완성하기 위해서

밤을 새워서 노트 위에 쓰인 시구들을 지우고 또 지우고

그렇게 무수히 노트와 씨름을 하였다.

그러나 지금 나의 상황은 그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컴퓨터라는 너무도 편리한 기계가 있으니, 굳이 힘들게 노트 위에 글을 써서

틀린 것을 볼펜으로 죽죽 지우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 자판기로 글을 작성하면 틀린 글씨 정도는 너무도 간단하게

백스페이스로 순식간에 지워주니 너무도 편리하기만 하다.

 

밤늦게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을 때에는 나의 조그마한 핸드폰이 갑자기 바빠진다.

구형 슬라이드폰인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폴더형 핸드폰을 구입하면서

버리려고 하다가 아까워서 그냥 가지고 있는 핸드폰이다.

 

 

구형 핸드폰이 문자 작성을 할 때 자판이 내 손에 비교적 익숙한 편이어서

시를 쓸 때에 주로 사용하고 있다.

 

시를 쓸 때에는 크고 넓은 노트를 사용하면 될 텐데

굳이 내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핸드폰으로 띄어쓰기도 없이 깨알 같은 글씨로

눈을 찡그려가면서 왜 힘들게 시를 작성하는 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상이 떠올랐을 때

급하게 노트를 펼치고 펜으로 쓰려고 하면

무슨 까닭인지 모르겠지만 번번이 시상이 막혀서 시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와 반면에 내가 항상 애용하고 있는 구형 핸드폰은 무슨 마력이 있는지

단 한 줄의 시상이 떠올랐을 때에도 일단 핸드폰의 자판을 누르기 시작하면

시가 봇물처럼 줄줄 나온다는 사실이다.

 

 

불편한 것은 핸드폰의 액정 화면이 너무 작아서 띄어쓰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인데,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초벌 작성한 시를 노트에 옮겨서 정서하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노트 위에 옮겨진 글을 보며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고치고 줄과 행을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

시의 내용을 꼼꼼히 읽어가다가 보면

또 바꾸어야 할 시구도 나오고 해서 여러 번 교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고치다 보면 노트 위에 쓰여진 나의 시는 온통 검은색 사인펜으로

줄이 북북 그어져 있어서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러나 핸드폰으로 쓴 시를 노트에 옮겨 쓰지 않고 컴퓨터로 작성해서 교정하면

쉽고도 깔끔하게 한 편의 시가 완성이 되니, 굳이 노트를 고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근래에 내가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가계부겸 그 날의 간단한 일과를 기록하는 수첩과

슈퍼에 갈 때 쇼핑할 물건을 기록할 때 사용하는 조그마한 메모 용지가 전부이다.

 

간혹 TV를 시청할 때 중요한 정보나 전화번호가 나올 때

연필로 급하게 메모 용지에 기록하기도 한다.

 

 

펜으로 종이에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볼펜이든지 만년필이든지 연필이든지 간에 필기 도구로 글을 쓴다는 것은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아날로그적인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종이와 펜을 멀리하게 된 현대인들에게

종이에 펜으로 꾹꾹 눌러서 글을 쓰는 일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일 만큼이나 중요하다.

 

글을 씀으로써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종이 위에 쓴 글은 고스란히 자신만의 필체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은 치매 예방에도 무척 좋다고 하니

날마다 부지런히 글을 써 나간다면

건강한 노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성스럽게 깍은 연필로 종이 위에 글을 써 보자.

하얀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자신 만의 마음을 담아가다 보면,

어느새 보이지 않던 사랑도 조금씩 다가오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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