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칼럼

추석 명절 안동 비빔밥에 대한 단상

minhang 2020. 9. 29.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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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 안동 비빔밥에 대한 단상

 

 이틀 전에 웅진 코웨이  코디가 정수기 점검을 위해 우리 집에 방문했다.

다음은 그녀와 나눈 간단한 대화이다.

 

 

그녀: 추석 연휴에   어디  가세요?

 

나: 시어른들도 다 돌아가시고 친정 부모님도 다 돌아가셔서 어디 갈 곳이 없네요. 

     그냥 집에서 지냅니다.

 

그녀(조금 부러워하며): 시댁에 안 가도 되니 너무 좋으시겠어요!

 

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집에서 지내도 명절 음식을 다 해야 하니, 

    오히려 더 힘든 것 같아요.   우리는  명절엔 안동 비빔밥을  꼭 해야 하는데요,

    나물 종류만  10가지 정도 돼요. 

    그걸 다  손질해서 다듬고  씻고 데쳐서  볶아야 하거든요. 

 

그녀(놀라서): 무슨  나물을 그렇게  많이 해요?  그걸 다 혼자서 하나요?

 

나: 물론이지요.  그런데  전 종류는 남편 담당이라서  다 해줘요. 

    그래도 기본 손질과 밑간은 내가 다 해줘야 하니까  힘들어요. 

    예전 같으면  시댁에서  손윗 동서가 거의 다  하고, 나는 설겆이와 야채 썰기 정도만 하면 되었거든요.       명절을 우리 식구끼리 지낸다고 해서 음식을 안 할 수도 없고,

     며칠 동안 먹을 음식을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니 힘든 것 같아요.

 

그녀: ................

 

나: 추석에  시댁에 가시나요?

 

그녀: 예. 여기서 가까워요.

 

나: 명절엔  역시 친척들이 모여야 명절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아요. 

     ( 내심,  집에서 식구끼리 지내는 것이  심적으론   편하다고 생각함.) 

 

그녀: 그건 그렇죠. (다음에  점검 올 날짜를 잡고 나서)

        그럼,  추석 잘 보내세요.

 

나(정수기 점검 날짜를 달력에 표시하고 나서): 코디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두 사람은 인사하고 헤어진다)

 


  시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난 후에, 나는 명절날 음식 만드는 에서 해방될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였으니.....

 

 엊그제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에 남편과 나는 딸을 대동하고  대형마트에 가서 추석장을 봤다.  

이 더운 날에 남편은 녹두전까지 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을  그것만은 안된다고 겨우 사정사정해서 

전 종류는  네 가지( 동태전, 배추전, 호박전, 동그랑땡)만을 하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다.

 

날씨가 너무 더우니  안동 비빔밥은  이번 추석엔 안 하면 안 되냐고 했더니

남편과 아들은 결사반대로 안동 비빔밥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제는 주일이라서  주일 예배에 다녀오고 나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겨우 끝냈다.

 

  남편은 거실에 신문지를  넓게 깔아 놓고  버너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아주 여유 있게 TV를 시청하면서 전을 구워대기 시작하는데.....

 

 전을 굽는 실력이  이제는 프로급이다. 

더운데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 전을 굽는 남편의 모습이 흡사 도를 닦는 도인의 모습처럼 존경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다.

 

  나는 부엌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도마 위에서 채소를 썰기 시작했다. 

채소 중에서  썰기가 가장 힘든 것이 당근과 무인데, 이번  추석엔  미리 준비해 둔 비장의 무기를 써 보았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채칼이라고 해서 사 둔 것인데, 이게  정말   채썰기엔  그만인 것 같다.  

 

 당근과 무를 손에 들고 그냥 이걸로 쓱쓱 문질러 주면  가는 채썰기가 완료되니,  나처럼 채썰기를 못하는사람들에겐 구원 투수나 다름없다.  그동안 왜 이것을 몰랐던지 한탄스럽기도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것을 사용해서 채썰기를 하고 보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채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내가 채소와 사투를 벌이고 있 동안   오후 6시경에  남편은 전 굽기를 완료했다고 쾌재를 부른다. 

이제 남은 것은 채소 볶기와 큰 나물(콩나물과 무) 안치기인데,  그것은 오로지 내가 담당해야 할 숙제이다.

 

 채소 썰어 놓은 것을 봉다리 봉다리에 담아 놓고 , 저녁을 먹고 나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밤 10시경에 채소를 볶기 시작해서 11시쯤에  숙제를  겨우 끝냈다. 

큰 나물 안치기와 두부 부침은  추석날 당일 아침에 하기로 남편과 합의를 보고 나는  어제  밤늦게야 겨우  주방의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애증의 안동 비빔밥 나물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압력 밥솥의 코드를 꽂고   큰 나물을 안치고 두부를 굽고 고등어를  굽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밥이 다 되었다고  알림 소리가 나서 밥솥을 열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밥솥에는 밥이 없고 텅 비어 있었다. 

어이없게도  내가 빈 밥솥에 전기 코드를 꽂았던 것이다.

 

 분명히  어젯밤에   미리 쌀을 안쳐 둔 줄 알았는데,   이런 건망증은  난생처음이다.  

급히  백미를 씻어서 백미 쾌속으로  밥을 해서  남편과 딸에게 추석날 아침상을   차려 주었다.  

아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고 있고, 나도 아침은 원래 잘 먹지 않아서 남편과 딸, 둘이서 추석날 아침 식사를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나:  매우 만족??

 

남편: 오 케이. 매우 만족.

 

나: 아 참, 냉장고에 넣어 둔 시금치를 깜박 잊었네.

 

남편:  어쩐지..   무엇인가  빠진 듯 허전한 것 같더라.

 

나:  저녁 식사 때   시금치 이야기  꼭 해줘. 또 빼먹을 수도  있으니까.

 

남편: 알았어.  

  

나는 언제쯤 안동 비빔밥에서 해방되려나..........

 

 

20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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