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칼럼

아름다운 사람- 동네 커튼 가게 주인 이야기

minhang 2020. 7. 25.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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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어느 지하철역의 화장실에서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문구가 그 장소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듯해서 몇 번이나 유심히 읽어 보았다.

공공 화장실을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해도 향기가 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그곳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심정에 간곡하게 호소함으로써

조금이나마 화장실을 깨끗하게 보존하려는 의도가 잘 나타난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곳에서 휴지를 아무 곳에나 버리려던 사람도 한 번쯤

그 문구를 읽어보게 되면 주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지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나의 큰 아이가 다섯 살 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우리는 17평형 서민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었는데,

너무 오래된 아파트여서 바퀴벌레가 얼마나 많이 나오던지

나는 그때 날마다 바퀴벌레와의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부엌과 큰방이었다.

세탁기를 놓아 둘 장소가 따로 없어서 베란다에 놓아두고 사용했었다.

그런데 베란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큰방과 연결되어 있어서

세탁기를 사용하려면 매번 큰방의 높은 문지방을 타 넘고 나가야만 했었다. 

세탁기도 수동식이어서 한번씩 세탁기를 돌리는 날이 되면

거의 한시간 동안 큰방과 베란다를 넘나들어야만 했다.

그러한 상황이고 보니 큰방 창문에 커튼을 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었다.

그래서 이사를 오고 나서 몇 달을 커튼을 달지 않고 살고 있었다.

아파트 상가에는 커튼 가게가 있었다.  그런데 한 번씩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여자는 보이지 않고 항상 남자 한 명만이 그곳에 있었다.

그 가게의 주인인 것 같았는데, 외모는 전혀 커튼 가게 주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큰 키에 하얀 피부와 아주 단정한 이목구비를 지니고 있어서

상당히 지적인 분위기가 풍겨지는 사람이었다.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이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우리 집 큰방에 커튼을 달기로 하고 그 가게에 찾아갔다.  

 

그는 아주 친절하게 커튼에 관해서 상담을 해주었었는데,

전혀 상인 같은 냄새가 나지 않고 오히려 학자가 자기 학문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는 것처럼

지적인 냄새가 풍겨났던 것 같다.


나는 그의 권유대로 우리 집 창문에 달 커튼으로 진한 보랏빛 천을 택하였다.

그렇게 해야 좁은 방이 조금이라도 더 넓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커튼을 다는 날이 되었다.

그가 직접 만든 커튼을 한 아름 들고 우리 집 안방에 들어왔다.

 

그때 안방에는 나의 개구쟁이 아들 녀석이 함께 있어서인지 그가 외간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일말의 두려움이 없고 오히려 편안함까지 느껴지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가 커튼을 달기 시작할 때였다.

아니다 다를까 그 날도 나의 개구쟁이 아들 녀석이 말썽을 피우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늘 그랬듯이 나의 아들 녀석을 호되게 야단을 쳤었다.

 

나의 아들 녀석이 갑자기 시무룩해져서 울먹이려고 할 때였다.

그는 잠시 커튼을 치던 손길을 멈추고 

나의 아들을 안아 주면서 아주 부드러운 소리로 말을 하였다.

"아름다운 사람아,......"  

그가 분명히 나의 아들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다음에는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름다운 사람아'라는 한마디만 했는지, 아니면 그다음에 몇 마디 더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묘한 감동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아들을 '아름다운 사람'으로 생각한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말썽꾸러기에다 개구쟁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단순히

'그는 아들이 없으니까 아마 그런 말을 하나보다'라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때 신기하게도 나의 아들이 그의 말 한마디에 울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런 상황에서 아마 그도 나의 아들을 조금이라도 야단쳤거나

아니면 '아이들이란 다 그렇죠 뭐'하는 식으로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나의 아들을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아이인데도 말이다.

그는 나의 아들을 마치 아름다운 꽃을 대하듯이

더할 수 없이 소중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마침내 커튼을 모두 달고 그가 우리 집을 나갔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보랏빛 커튼이 남아서

그동안 썰렁하던 창문을 아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그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향기롭고 아름답습니다.'라는 그 문구가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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