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칼럼

이대 앞 제과점 그린 하우스

minhang 2020. 12. 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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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앞  제과점 그린 하우스

 이대 정문 앞에는 '그린 하우스’라는 좀 색다른 이름의 제과점이 있었다. 그곳은 내가 이대에 들어가기 위해서 입학시험을 치르던 날에 처음으로 들어가 본 곳이다. 

 그때는 겨울이어서 다소 추운 날씨였다. 대구에서 올라오신 엄마와 언니가 그곳에서 내가 시험을 치르고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린 하우스에서 내가 시험을 마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언니를 생각하며 왠지 모르게 조급한 마음으로 시험을 치른 것 같다.

 

 

  지금은 대입 본고사 시험을 거의 논술형으로 치루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대입 본고사를 논술형으로 치르는 대학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때 이대는 본고사를 논술형으로 치렀기 때문에 이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따로 본고사 전문 학원에 들어가서 몇 개월간 수강을 해야 했다.  나는 본고사 준비를 위해서 시험 치기 한 달 전쯤에 서울에 있는 사촌 언니 집에 와서 잠시 동안 기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학원에 다니려고 생각했었지만 시간도 얼마 남지 않고 해서 그냥 혼자서 준비했던 것같다. 

그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시험문제가 거의 객관식이어서  논술식 문제는 한 번도 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시험 당일날에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다소 떨리는 마음이었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무척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그때 이미 한 번의 불합격의 쓴잔을 마신 후였다.  이대 특차 모집에서 법대에 원서를 냈다가 낙방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이대 법대를 너무 낮게 본 것이 내 불찰이었다.

 

 그동안의 이대 법대의 예비고사 평균 성적을 분석해 본 결과 나의 성적으로 충분히 합격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본고사 시험에 왠지 자신이 없어서 비록 학과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특차에 합격하면 본고사 시험은 치르지 않아도 되니까 선뜻 법대 특차 모집에 원서를 내고 만 것이다.  

결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낙방이었다.

 

 특차 모집에서 떨어졌으니 당연히 본고사를 치루어야 했다. 그런데 그때는 일단 한번 지원한 과는 변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선택의 여지없이 본고사에서도 법대를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내 인생의 중대한 실수였던 것 같다. 전혀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과를 쉽게 들어가려고 특차 모집에 원서를 불쑥 낸 것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국문과나 영문과를 지원했더라면 나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생각된다. 인생을 너무 쉽게 살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나는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시험에 너무 지쳐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고3 수험생 시절에는 밥 먹고 하는 일이란 학교에 가서 날이면 날마다 시험을 치르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으니 무척 고달팠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때 예비고사 시험을 치르고 나서 더 이상 시험을 치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나의 예상과는 달리 특차 모집에서 떨어졌으니 나는 또 한 번의 시험을 치러야만 했다. 

 

 

 본고사 시험 장소에 도착하니 커다란 강의실에 여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모두 다 나보다 예쁘고 나보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들처럼 보여서 잔뜩 주눅이 들었다. 그때 나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없어서 시험에 꼭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침내 시험 문제지가 배부되었다. 국어 시험지였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심정으로 떨리는 마음을 억지로 추스르면서 시험지를 풀어 나갔다.  그런데 논술형 문제가 왜 그리 재미있고 쉽던지 나는 아무런 막힘이 없이 답안지를 신나게 써 내려갔던 것 같다. 영어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시험을 마치고 나서 나는 부리나케 그린 하우스로 뛰어갔다. 그 당시에 그린 하우스는 목조로 된 이층 건물이었는데, 그다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담한 크기에 레스토랑의 분위기도 다소 풍겨서 제과점 치고는 제법 운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린 하우스 2층으로 올라갔더니 엄마와 언니가 그때까지 나를 기다리며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때 무슨 말을 하였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언니가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던 모습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는 그때 그저 시험이 끝났다는 것만이 기뻐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그린 하우스에서 무척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졸업을 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모교에 들렀다가 그린 하우스에 가 보았다. 그런데  이름은 분명히 그린 하우스인데 모습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목조 건물이 콘크리트 건물로 바뀌었고 크기도 대형매장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제과점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대형 매장 안에는 수많은 손님들로 몹시 붐비고 있었다. 빵 종류도 예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진 것 같았다.  제과점이 대형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성공했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이 왠지 모르게 예전보다 삭막하고 허전한 것 같아서 씁쓰레함을 느껴야 했다.  


 요즈음에는 무엇이든지 대형화로 되어가는 추세에 있으니 제과점도 결코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는 작고 아담했던 그 옛날의 그린 하우스가 퇴색하지 않는 그리움으로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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