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칼럼

가을비 내리는 날에 우산을 접고

minhang 2023. 9. 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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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창문을 열어 보니 비 탓인지 갑자기 하강한 기온으로 날씨가 추워서 다시 창문을 닫아버렸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더워서 냉방기구를 사용해야만 했었는데,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다니 새삼스럽게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게 된다. 이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이 시작될 것 같다.

지난여름은 그렇게 무덥고 길었었는데, 가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숙연한 느낌이 든다.

가을비는 소나기나 장맛비와는 달리 그렇게 사납지도 않고 빗줄기가 굵지도 않다. 소나기가 내릴 때엔 우산을 써도 옷과 신발이 빗물에 젖기도 하고 바람조차 심하게 불 때에는 우산을 써도 거세게 내리는 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우산이 바람에 날리기도 한다.

 

그러나 가을비는 소나기처럼 사납지도 않고 장맛비처럼 우렁차지도 않고 새색시의 걸음처럼 얌전하게 내려서 참 좋은 것 같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우산을 받쳐 쓰고 거리를 걷거나 고궁 뜰을 산책하는 것은 참 운치 있는 일이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에 먼 산을 바라보면, 산은 어느새 하얗게 피어오르는 안개로 둘러싸여 있어서 그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너울을 쓰고 떨리는 걸음으로 결혼식장에 입장하고 있는 신부의 모습처럼 더없이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하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에는 유리창이 환히 비치는 찻집에 앉아서 잠시나마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참 좋은 일인 듯하다. 그 자리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령 혼자라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혼자서 찻집에 앉아서 차를 주문하고, 혼자서 차를 마시며 창밖으로 내리고 있는 가을비를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의 눈에 처량하게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다 혼자서 태어나서 죽을 때에도 혼자서 가야만 하는 고독한 존재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고독이라는 것이 그다지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깊은 사색은 고독 속에서 나오기 때문에 우리가 고독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과의 대화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참 좋은 것 같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 잠시 우산을 접고 찻집에 들어가서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자. 세상은 내리는 비로 깨끗하게 씻겨서 나무들은 더욱 푸르고 사람들도 차분해진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은 침묵 속에서 우리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가만히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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