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바나나가 익어가는 시간

minhang 2022. 4. 28.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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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익어가는 시간

/ 이정화


구름의 뿌리를 찾아 헤매네
리모컨으로 아침을 열고
당신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
푸틴이 크림을 먹어버렸네
석방을 선망으로 잘못 읽은 나는

푸른 양철 대문을 열고
하숙집 할머니가 걸어 나오네
두부의 밑면이 까맣게 타버리고
데리다를 읽다가 그만둔
갈색 테이블 위에서
둥글게 웅크리고 있는
사유의 시간들이 점점이 박혀있네

장미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지
비밀의 문이 열리고, 닫히고
이제는 열쇠가 필요 없는
당신의 정원은 너무 아늑해

부드러운 껍질을 벗기면
속 깊은 고요가 한가득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서
하루는 노랗게 익어갈 것이고


-한글문학 2018년 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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